'우리도 노력은 하는데'…'산재 엄벌' 기조에 건설사들 속앓이

작성일
2025-08-0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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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우리도 노력은 하는데'…'산재 엄벌' 기조에 건설사들 속앓이
넓은 현장서 근로자 수백명 근무…외국인 많아 소통에 어려움도
"안전관리비 아낄 수도 없고 아껴도 수익 안 돼…사고 나면 손실 더 커"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회사도 이미지 실추 등으로 큰 피해를 봐요. 그걸 원하는 기업이 어디 있겠습니까. 현장이 넓고 인원이 워낙 많다 보니 통제가 쉽지 않은 거죠."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의 잇따른 사망사고를 거론하며 산업재해 빈발 기업에 강력한 징벌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건설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건설사들은 근로자 사망사고를 막아야 한다는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안전관리 비용을 아끼려고 일부러 사고 예방을 소홀히 한다는 '미필적 고의' 인식은 실상과는 다르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건설사들은 시공 현장에서 상시로 안전관리 조치와 교육을 한다.
아침에 근로자들이 출근하면 전체 조회를 열어 몸풀기 체조를 한 뒤 원청인 시공사의 안전관리자가 당일 작업에서 유의해야 할 안전 관련 문제와 수칙 등을 전파한다.
이어 협력업체별로 작업반장들이 각자 소속 근로자들을 모아 작업 전 안전회의(TBM)를 진행한다.
TBM은 'tool box meeting'의 줄임말로, 과거에는 작업자들이 당일 작업 시작 전 공구함(tool box) 주변에 모여 회의를 했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작업 내용과 각자의 역할, 발생 가능한 위험요소, 예방 수칙 등을 교육하는 시간으로, 현장 안전관리에 매우 중요한 절차 중 하나다.
이를테면 당일 외벽에 비계를 쳐야 하는 경우 고공 작업에 따른 추락에 각별히 유의하라고 하거나, 층별 콘크리트 타설 작업일에는 콘크리트가 굳을 때까지 아래에서 지탱하는 동바리(서포트)가 무너지지 않도록 설치 상태를 철저히 확인하라는 등의 주문이 나온다.
근로자 개개인의 안전의식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건설현장이 넓고 작업자는 많기 때문이다.
대형 건설사들이 시공을 맡는 주요 현장의 경우 500∼600명에 달하는 근로자들이 넓은 구역에 흩어져 근무하지만 원청·협력업체의 관리 인력은 수십명 수준이다.
안전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장비 결함 가능성 등을 수시로 점검하고, 추락 위험이 있는 난간 등에 안전시설을 설치하는 등 사전 예방조치를 해도 일부 근로자들의 실수나 부주의 등으로 개구부로 추락하는 등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는 게 건설사들의 설명이다.

외국인 근로자 비중이 커진 데 따른 언어적 소통 문제도 안전관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다.
한 대형 건설사 임원은 "현장 점검을 다니다 보면 소통이 안전관리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외국인 근로자들의 한국어 소통 능력은 저마다 천차만별이라 꽤 소통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업에 필요한 내용을 거의 알아듣지 못하는 수준도 있다"고 말했다.
건설근로자공제회에 따르면 올 4월 기준 국내 건설근로자의 17.1%인 11만3천962명이 외국인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외국인 근로자와 소통을 위한 번역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GS건설이 자체 개발한 '자이 보이스'(Xi Voice)는 한국어 음성을 중국어, 베트남어 등 120여개 언어 텍스트로 즉시 변환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일상 대화뿐 아니라 건설 현장에서 사용되는 각종 엔지니어링 전문용어도 학습시켜 기능을 계속 보완하고 있다.
건설업계가 가장 억울해하는 점은 건설사들이 안전관리 비용을 아끼려고 사고 예방조치를 소홀히 한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안전관리비를 아낀들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는 구조라는 게 건설업계 주장이다.
공공 발주 공사는 예정가격을 산정할 때 안전관리비가 실비로 별도 책정되고, 이를 절감한다고 해도 건설사 이익으로 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간공사 역시 계약서에 안전관리비를 명시하게 돼 있어 목적 외 사용이 확인되면 문제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
또 관계 법령에 따라 안전관리비는 안전화, 헬멧 등 작업자 보호구 지급과 추락 방지 등을 위한 안전시설물 설치, 안전교육 비용 등 사용처가 지정돼 있어 다른 곳으로 빼돌리면 법적 문제가 생긴다.
이뿐 아니라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공사 중단, 벌점, 수주 제한은 물론 형사처벌까지 받아야 하는 등 리스크가 있어 안전관리 비용을 아끼는 것보다 손실이 크다는 게 건설업계 설명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특정 현장에서 심각한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그 건설사는 이후 수주에 큰 타격을 받는다"며 "사고가 난 뒤 정비사업 등을 수주하려 할 때 경쟁사들이 조합원 단체 채팅방 등을 통해 해당 건설사의 안전사고 사례를 계속 퍼 나르며 여론전을 펴 이미지를 깎아내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건설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건설 현장에서 안전관리비를 줄여 이익을 내는 구조는 현실과 거리가 멀고 오히려 사고가 발생하면 훨씬 큰 비용과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며 "건설업계는 안전을 비용이 아닌 필수 투자로 인식하며, 제도·실무적으로 안전관리 자원 투입을 강화하는 추세"라고 강조했다.

puls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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